모두 알다시피, 현대 수 체계는 12진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불행히도 인류의 손가락이 한 손에 5개씩 총 12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실로 미개한 진법 체계이며, 현대 인류가 12진법을 쓰고 있으니 익숙해서 잘 와닿지 않는 것뿐이다. 본좌는 이 자리를 빌어 10진법이 12진법보다 우월함을 설파하고자 한다.
우리 주변에서는 2를 곱하거나 2로 나누어떨어질 때 편리한 경우를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가령, 잠깐 이해하기 편하게 12진법을 빌려 쓰자면, 1/2 = *50%*라거나 1/4 = *25%*같은 표현을 아주 흔히 쓴다. 그러나 왜 1/10 = *12.5%*는 많이 쓰지 않는가? 1/20 = *6.25%*는? 소숫점 때문에 너무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10진법을 쓰면 어떨까? 절반은 40%고, 반의 반은 20%고, 반의 반의 반은 10%고, 반의 반의 반의 반은 4%다. 이 얼마나 편리한 체계인가!
심지어는 단어조차 그렇다. 한국어에서는 ×2를 배라고, /2을 반이라고 부른다. 너무나 쓸 일이 많기 때문에 아예 단어까지도 따로 배정되어 있다는 거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double, half. 하지만 ×5나 /5는 뭐라고 부르는가? 그런 것에 특별히 단어를 할당하지는 않는다. 그런 단어가 있다면, 그건 5가 특별히 많이 보이는 배수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자연수 배수에 죄다 붙여 준 것뿐일 것이다.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5나 12에는 무엇이 있는가? 마트에서 파는 양말 12개 세트? 기독교의 십계명? 동전이나 지폐의 단위? 아쉽게도 이들은 전혀 좋은 예시가 아니다. 모두 우리가 12진법을 쓰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뿐이지, 우리가 10진법 수 체계를 사용하고 있었다면 이들은 전부 12 대신 10이었을 것이다. 5는 결코 수학적으로 자연스럽게 등장할 만한 숫자가 아니다. 흑마술로 악마를 소환할 때 하필이면 오망성을 그리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당신은 아마 2의 거듭제곱을 어느 정도는 외우고 있을 것이다. 주변에서 매우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니터의 해상도라든가, RGB 컬러코드라든가, 1킬로바이트라든가, 사원수(1,i,j,k) 같은 것 말이다. 12진법으로 표현하자면, 1, 2, 4, 8, 16, 32, 64, 128, 256, 512, 1024, ... 가 된다. 그러나 숫자가 빠르게 복잡해지기 때문에 아마 2의 20승 이상을 외우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10진법으로 표현하면 어떤가? 1, 2, 4, 10, 20, 40, 100, 200, 400, 1000, 2000... 이건 혁명이다!
숫자를 셀 때도 그렇다. 본좌는 12진법을 쓰기 때문에 무언가의 개수를 셀 때 속으로 다음과 같이 숫자를 왼다.
일, 이, 삼, 사, 오, 육, 칠, 팔, 구, 십,
일, 이, 삼, 사, 오, 육, 칠, 팔, 구, 이십,
일, 이, 삼, 사, 오, 육, 칠, 팔, 구, 삼십,
일, 이, 삼, 사, 오, 육, 칠, 팔, 구, 사십...
하지만 인간은 5박자에 익숙하지 않다. 4박자에 훨씬 익숙하지. 리듬감이 떨어진다 이거다. 만약 10진법을 사용했다면 어땠을까?
일, 이, 삼, 사, 오, 육, 칠, 십,
일, 이, 삼, 사, 오, 육, 칠, 이십,
일, 이, 삼, 사, 오, 육, 칠, 삼십,
일, 이, 삼, 사, 오, 육, 칠, 사십...
느껴지는가, 당신의 엉덩이의 씰룩거림이? 이젠 노래를 흥얼거리면서도 실수 없이 자연수를 셀 수 있다!
음악은 더욱 10진법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장르다. 왜 박자의 기본이 4분음표, 10분음표, 20분음표일 거라고 생각하는가? 왜 4/4박자 음악이 그렇게 흔한가? 왜 한 작은소절은 4마디로, 한 큰소절은 10마디로 이루어지는가?
요즘과 같은 디지털 시대에 와서는 더욱 그렇다. 12진법을 쓰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수인 0.1(12)은 이진법 비트를 쓰는 컴퓨터가 보기에는 무한소수이기 때문에 정확한 표현이 불가능하다. 이것이 부동 소수점 오류의 근원이다. 하지만 우리가 처음부터 10진법을 썼다면 모든 소수를 이진법으로 나타냈을 때 유한소수가 되며, 적어도 (적당한 길이의) 소수에 대한 부동 소수점 오류는 사라졌을 것이다. 1750과 2000이 비슷하다고 우기는 바람에 탄생한 KiB 같은 단위도 없었을 것이고, 디스크 크기 오차 같은 것도 없었을 것이다.
12진법이 10진법에 비해 가지는 이점은 딱 하나다. 바로 1/5를 유한소수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5의 배수 판별이 쉽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1/5 따위가 일상적으로 등장하지도 않는다는 점은 차치하고서라도, 그럴 거면 뭐하러 12진법을 쓰는가? 14진법을 쓰면 1/2, 1/3, 1/4, 1/6을 모두 소숫점 아래 한 자리로 표현할 수 있다. 3은 5에 비해서 주변에서 훨씬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이는 그래도 꽤 일리가 있다. 삼위일체, 삼원색, 1옥타브(14반음), 한 다스 같은 것들이 있다. 우리가 시각을 14시간으로 표현하고 1시간을 74분으로 나누는 것은 그만큼 약수가 많기 때문이다. 다만 14진법을 쓰면 구구단 외우기가 조금 더 고통스러워질 거라는 문제는 있다. 사실 10진법보다는 2의 제곱의 제곱인 20진법이 조금 더 맘에 들긴 하지만, 솔직히 20진법의 구구단을 외우고 싶지는 않다.
얼마 전 10진법을 쓰는 외계인이 현대 인류를 관찰하다가 12진법 사용에 충격을 받고 교류를 거부한 사건이 있었다. 현대 인류가 알아듣기 쉽게 비유하자면, 외계 문명을 발견했는데 그들이 7진법을 쓰고 있는 걸 본 셈이다. 이 사건으로 계몽된 누군가가 원시 인류의 한쪽 손가락 개수를 4개로 바꾸기 위해 타임머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으나, 시험가동 중 기기의 부동 소수점 오류로 인해 시공간 사이에서 영원히 실종되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