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딩 룰과 내쉬 균형






※ 이 글은 [가이아 프로젝트: 잃어버린 함대]를 상정하고 작성되었습니다. 다만 글의 내용은 세팅 이후 랜덤성이 없는 모든 점수내기 게임에 적용 가능합니다.

게임 이론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내쉬 균형"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내쉬 균형이란 임의의 완전정보 다인 게임에서 모든 플레이어가 자신의 전략을 바꿀 이유가 없는 안정점을 뜻합니다. 즉 모든 플레이어의 전략이 서로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어, 만약 누가 전략을 조금이라도 바꾸면 본인이 손해를 보는 상태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수학적으로 내쉬 균형은 반드시 존재함이 증명되어 있지만 유일하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비딩 룰이란 (보드게임 등에서) 세팅의 불공정성을 해소하기 위하여 미리 점수 패널티를 제시하여 시작 조건을 경매하는 세팅 방식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이번 게임에 등장하는 종족들 중 이 종족을 고르고 싶어. 대신 내 점수를 15점 깎을게." 같은 식입니다. 가장 높은 패널티를 제시한 사람부터 원하는 조건을 선택하여 가져가게 되지요.

가이아 프로젝트는 너무 복잡하니까 간단한 가상의 게임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3명의 플레이어가 게임을 합니다. 게임 세팅은 다음과 같습니다: 종족 A, B, C 모두 각자 100점을 가지고 게임을 시작합니다. 먼저 종족 A가 버튼 두 개 중 하나를 골라 누릅니다. 첫 번째 버튼을 누르면 B의 점수를 30점, C의 점수를 15점 깎습니다. 두 번째 버튼을 누르면 자신이 20점을 얻는 대신 B도 25점을 얻습니다. 버튼을 누르면 게임은 끝납니다.

비딩이 없는 일반적인 상황에서, 두 번째 버튼을 누르면 B가 이기기 때문에 당연히 A는 첫 번째 버튼을 누를 것입니다. 그리고 게임이 끝났을 때 점수는 A가 100점, B가 70점, C가 85점이 됩니다. 이것을 예측한 모든 플레이어들은 다음과 같이 비딩할 것입니다: A에게 -30점, B에게 0점, C에게 -15점. 그러면 세 플레이어가 각자 무슨 종족을 가져가게 되더라도, 게임이 끝났을 때 점수는 세 종족 모두 70점으로 비기게 됩니다. 완벽한 밸런스를 찾은 것이죠.

여기서 비딩을 다르게 하거나 다른 버튼을 누르는 것은 바보짓입니다. 가령 다른 플레이어가 고작 -29점에 종족 A를 가져가는 것을 그냥 놔둔다면, 그 플레이어가 100 - 29 = 71점으로 승리할 것입니다. 반대로 -31점을 불러서 A를 가져가는 것도 바보짓인데, 100 - 31 = 69점으로 패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종족 A가 갑자기 생각을 바꾸어 두 번째 버튼을 누를 리도 없습니다. 그러면 A가 120 - 30 = 90점, B가 125 - 0 = 125점, C가 100 - 15 = 85점으로 B가 우승하겠죠. 어떤 플레이어도 자신의 전략을 바꾸지 않을 것이므로 이 (-30, 0, -15)라는 비딩값은 내쉬 균형점입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이론적으로 완벽한 비딩과 이론적으로 완벽한 플레이를 한다면 모든 플레이어들은 비길 것이고, 따라서 비딩 룰은 세팅의 불공정성을 이론적으로는 완벽하게 해소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앞서 말했듯이 내쉬 균형점은 유일하지 않습니다. 가령, 이 플레이어들이 높은 인게임 점수를 보는 것이 즐거워서 두 번째 버튼을 선호한다고 해봅시다. 종족 B가 A보다 더 높은 점수를 얻는다는 문제는 비딩으로 해결할 생각인 거죠. 종족 A가 두 번째 버튼을 누른다면 게임이 끝났을 때 종족 A는 120점, 종족 B는 125점, 종족 C는 100점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합리적인 비딩은 A에게 -20점, B에게 -25점, C에게 0점입니다. 그러면 모두가 100점으로 비기게 되죠.

만약 이렇게 (-20, -25, 0)으로 비딩이 끝난 다음 종족 A를 잡은 플레이어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 첫 번째 버튼을 누르면 어떻게 될까요? A는 100 - 20 = 80점, B는 70 - 25 = 45점, C는 85 - 0 = 85점으로 C가 승리합니다. A 입장에서 이는 자폭입니다. A는 첫 번째 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20, -25, 0) 또한 내쉬 균형점입니다. 두 번째 내쉬 균형이죠. 유일하지 않다고 했잖아요.

견제를 중시하는 플레이 그룹은 첫 번째 버튼에 묶인 내쉬 균형 (-30, 0, -15)에 맞춰서 비딩할 것입니다. 반면 높은 인게임 점수를 중시하는 플레이 그룹은 두 번째 버튼에 묶인 내쉬 균형 (-20, -25, 0)에 맞춰서 비딩할 것입니다. 어느 한쪽이 맞거나 틀린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플레이스타일의 차이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견제를 중시하는 그룹 사이에 높은 인게임 점수를 중시하는 인원 한 명이 끼어들었다고 해봅시다. 그렇다면 두 명은 (-30, 0, -15)로 비딩하고 한 명은 (-20, -25, 0)으로 비딩할 것입니다. 그 결과 종족 A는 -30점에, 종족 B는 -25점에, 그리고 마지막까지 남은 종족 C는 0점에 선택됩니다.

이제 첫 번째 버튼이 눌러진다면 종족 A가 100 - 30 = 70점, 종족 B가 70 - 25 = 45점, 종족 C가 85 - 0 = 85점으로 C가 우승하게 됩니다. 두 번째 버튼이 눌러진다면 종족 A가 120 - 30 = 90점, 종족 B가 125 - 25 = 100점, 종족 C가 100 - 0 = 100점으로 B와 C의 공동 우승이 됩니다. 정확한 비딩 룰에 따라서 결과는 약간 다를 수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셋 모두 비기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런, 세팅의 불공정성이 완벽히 해소되었다면 모두가 비겨야 할 텐데요. 누가 비딩이나 플레이를 잘못한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플레이어들이 서로 다른 내쉬 균형점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일 뿐입니다. 말하자면 플레이스타일이 다른 두 그룹이 섞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실제로도 이런 일은 많이 일어납니다. 가령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최고점수를 향해 플레이할 거라고 가정하고 좋은 종족에게 높은 비딩을 불렀다가 크리티컬한 견제플레이를 맞고 고꾸라지는 경우는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 두 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비딩은 이론적으로도 밸런스를 보장하지 않는다.
2. 비딩 결과는 플레이에 영향을 끼친다.


가이아 프로젝트에서 비딩 대신 맵 돌리기 규칙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습니다. 사실 애초에 비딩이 아니라 맵 돌리기가 공식적으로 권장되는 규칙이기도 합니다. 날뛰는 밸런스를 측정하고 비딩을 통해 counterbalance하려는 시도에 비해서, 애초에 세팅이 더 공평해지도록 변경하는 쪽이 밸런스를 더 잘 잡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보여집니다.

물론 어떤 규칙을 통해 세팅의 불공정성을 해소할 것인지는 플레이어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각 방법마다 장단점이 있으니까요.

참고. 2인 플레이에서는 비딩 룰이 이론적으로 완벽하게 밸런스를 잡아줍니다.



이충명, 2025.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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