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체스 기물들의 시작 위치 및 특수 기보 (승급, 캐슬링, 앙파상)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읽을 수 없습니다. 모든 그림은 백이 아래, 흑이 위입니다.
1. 일반적인 체스 퍼즐은, 주어진 상황을 가지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을 요구합니다. 가령,
Mate in 2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Mate in n 퍼즐은 특별한 말이 없다면 아래쪽이 백이며, 백의 차례입니다). 하지만
이 상황이 나오려면 과거에 어떤 상황을 거쳐왔는가? 를 분석해야 하는 체스 퍼즐의 장르를
Retrograde Analysis 퍼즐, 혹은 줄여서
Retros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예시로 "현재 흑 차례다. 백의 마지막 움직임은 무엇이었겠는가?" 같은 퍼즐이 있습니다. 아래의 퍼즐을 풀어 보세요 (아주 어렵습니다.)
Q1 (Hard). Black to move. What was White's last move?
2. 레트로 퍼즐은 가끔 캐슬링이나 앙파상에 대한 분석을 요구합니다. 이 경우 얼핏 보면 당연해 보이는 두 가지 규칙이 적용됩니다.
(A) 캐슬링은, 불가능함이 증명되지 않는 이상, 가능하다고 본다. (B) 앙파상은, 가능함이 증명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고 본다. 이에 따라, 일부 레트로 퍼즐은 캐슬링이 불가능함을 증명하거나 앙파상이 가능함을 증명하는 것이 풀이의 일부가 됩니다.
3. 그러나 기물을 잘 배치하면 위의 (A)와 (B) 규칙이 충돌하는 퍼즐을 만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캐슬링이 되면 앙파상도 되고, 앙파상이 안 되면 캐슬링도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캐슬링과 앙파상이 둘 다 가능하다고 봐야 할까요, 둘 다 불가능하다고 봐야 할까요? 답은 둘 다입니다. 두 가능성을 모두 체크하고 각각에 대한 답을 제출해야 합니다. 이를
Partial Retrograde Analysis (PRA) 라고 합니다.
4. PRA가 필요한 문제의 경우 재미있는 현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바로 "해답이 존재함을 증명할 수는 있지만 실행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Mate in 2 문제가 존재합니다. 한번 볼까요? 백 차례입니다.
Q2 (Easy). White to move, mate in two.
현재 백 차례이므로 흑이 막 움직인 상황입니다. 만약 흑이 킹이나 룩을 움직였다면 캐슬링도 불가능하고 앙파상도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만약 흑이 폰을 움직였다면 (체크로 인해 1칸 움직였을 리가 없으므로) 캐슬링도 가능하고 앙파상도 가능합니다. 마지막에 킹이나 룩이 움직였다면 1. Ke6 Kf8 2. Rd8# 을 통해 체크메이트가 됩니다. 마지막에 폰이 움직였다면, 1. hxg6 e.p. O-O-O 2. h7# 을 통해 체크메이트가 됩니다. 하지만, 1. Ke6을 한다고 마지막에 킹이나 룩이 움직였다는 것이 증명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흑은 O-O-O로 방어할 수 있습니다. 또한, 1. hxe6 e.p. 를 하면 흑은 캐슬링 외의 아무 움직임을 합니다. 그러면 킹이 마지막으로 움직인 것이 폰이라는 것이 증명되지 않으므로, 첫 수의 앙파상은 규칙 (B)를 위반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 경우 2수만에 체크메이트를 거는 방법이 존재함은 증명할 수 있지만, 실행은 불가능합니다.
5. 한편, 이 규칙을 악용(?)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상대의 캐슬링을 막기 위해 내가 캐슬링을 하는 경우입니다. 현재 상태는 내가 캐슬링이 가능한지 아닌지 모르기 때문에 규칙 (A)가 적용되지만, 내가 캐슬링을 해 버리면 내 킹과 룩이 움직인 적이 없다는 말이 되고, 이로부터 과거를 되짚어보면 상대 킹이나 룩이 움직인 적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면 상대의 캐슬링을 논리적으로 봉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략을
Retro Strategy (RS)라고 합니다. 아래의 예시를 보고, 왜 백이 캐슬링을 하면 흑의 캐슬링이 봉인되는지 직접 알아내 보세요.
Q3 (Medium). White to move, mate in two.
6. 이 규칙 악용의 끝판왕은
A Posteriori (AP) 라는 상황으로, 이를 이용한 퍼즐이 제시된 적이 있지만 오류가 발견되어 현재 이것을 이용한 퍼즐은 없습니다. 이론적으로만 가능하죠. 어떤 경우냐면, 내가 캐슬링을 할 수 있다면 (복잡한 논리를 거쳐) 상대가 방금 폰을 2칸 이동시켰음을 증명할 수 있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나는 일단 첫 움직임으로 앙파상을 질러서 상대를 압박하고,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캐슬링을 함으로써 내 앙파상이 규칙 (B)를 어기지 않았다고 증명해냅니다. 반대로 이를 상대하는 흑의 최선의 수는 내 킹이나 룩이 한 칸이라도 움직이게 몰아넣어서, 앙파상이 가능했다는 증명을 해내지 못하게 막아 규칙 위반으로 실격패시키는 것입니다.
7. 여담입니다만, 체스의 룰이 언제나 지금과 같지는 않았습니다. 현재 FIDE의 공식 규정에 의해서는 불가능하지만, 과거 언젠가는 신기한 움직임들이 가능했습니다. 가령 수직 캐슬링: 킹 앞쪽 끝 칸에 폰이 도착해서 룩으로 승급한 다음, 룩이 한번도 움직이지 않았음을 주장하며 수직으로 캐슬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승급 거부: 끝에 도달한 폰이 승급을 거부할 수 있었습니다. 움직일 수 있는 말을 일부러 없도록 만들어서 스테일메이트를 유도하는 데 쓰일 수 있죠. 상대 기물로 승급: 예, 몇백 년 전에는 이게 가능했습니다. 다음 퍼즐을 풀어 보세요.
Q4 (Joke). White to move, mate in one.
이와 같이 옛날 규칙을 사용하는 문제들은 현재는 joke problem으로 취급됩니다.
8. 이제 몇 가지 레트로 문제를 풀어 보세요. 팁을 주자면, 폰들이 잡은 기물의 수, 승급할 수밖에 없었던 폰, 플레이어의 마지막 움직임, 시작 위치에서 탈출할 수 없었던 기물(특히 비숍), 흰칸/검은칸만 갈 수 있는 비숍들, 캐슬링 가능 여부 등이 중요한 포인트가 됩니다.
Q5. (Easy) On what square was the White queen captured?
Q6 (Medium). In this position, why can't White castle?
Q7 (Hard). What is the missing piece on h4?
Q8 (Hard). Black just castled. What is the correct position of the pawn, f2, or g2?
Q9 (Hard). White to move. No pawn has underpromoted. What is the correct position of the pawn, c6, or d6?
Q10 (Medium). A White pawn has dropped off of the table. Given that neither King has ever moved, where was the dropped pawn?
Q11 (Hard). White just castled. Prove that there is a promoted pawn on the board.
Q12 (Medium). Black to move. Where is the invisible White King?
Q13 (Hard). White gave Black odds of a queen. Both White knights are original. Can White castle on both sides?
Q14 (Vicious). White gave Black odds of both knights. Neither King has moved or been in check. On h6 lies an unknown. Where was it two moves ago?
Q15 (Vicious). White to move. Can he mate in two?
Q16 (Vicious). On g4 lies an unknown. Black to move. What is the unknown? And, can Black castle?
Q17 (Hard). Where did the pawn on g3 came from, f2 or h2?
Q18 (Hard). Exactly one of the two white knights has not been moved. Which one is the lazy one?
Q19 (Easy). One of the pieces, which is not a pawn, is in a wrong color. Which one is it?
Q20 (Medium). White to move. Neither King had yet moved. Prove that White queen's bishop had been to the 8th row.
Q21 (Medium). White King and queen were never moved nor attacked. What happened to the Black pawn from g7? Did it promote? Is it alive? Where is it?
Q22 (Medium). One of the White knights is a genie and not real. Black can castle, White King has not moved. Which knight is a genie?
Q23 (Medium). Neither King has yet moved. Among the three white rooks, which is the promoted one?
Q24 (Easy). Black King has not yet moved. White King has moved only once. Spot two rooks which have not moved.
대부분의 문제의 출처는 Raymond Smullyan의 "The Chess Mysteries of Sherlock Holmes" 와 "The Chess Mysterios of the Arabian Knights" 입니다. 이 분은 16살부터 레트로그레이드 체스 퍼즐을 만들어 왔고, 두 책에 수록된 약 100문제의 모든 문제는 엮은 것이 아니라 직접 창작하셨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