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퍼즐게임인가?

-퍼즐게임과 인접 장르의 구분에 대해-






퍼즐게임이란 무엇일까요?


사전적으로 말하자면, 머리를 써서 지적 유희를 얻는(퍼즐) 인터랙티브 놀이(게임)입니다. 따라서 넓게 보면 퍼즐게임이란 추리게임, 방탈출게임, 미궁게임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말이고, 실제로 사람에 따라서 이러한 장르들을 퍼즐게임의 범주에 넣기도 하고 빼기도 합니다.

그러나 퍼즐게임을 이 말 그대로 넓게 정의해 버리면 모든 게임이 퍼즐게임이 되는 대참사가 나서 (머리를 안 쓰는 게임이 어디 있겠어요?) 분류하는 의미가 없게 됩니다. 그러니 오늘은 무엇이 퍼즐게임인지, 그리고 퍼즐게임과 비슷하지만 다른 장르로는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1. 퍼즐게임이라고 불리려면 게임의 주 컨텐츠가 퍼즐이어야 한다.


일단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갈 사실은 게임의 특정 구간에서 퍼즐을 잠깐 등장시키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는 점입니다. 젤다의 전설이나 포켓몬 같은 게임들을 보면 분명히 일부 구간에서 퍼즐이 등장하긴 하지만 아무도 젤다나 포켓몬을 퍼즐게임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즉, 퍼즐게임이라 불리려면 일단 주 컨텐츠가 퍼즐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 퍼즐과 관련없는 여러 가지 요소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Braid와 같은 퍼즐 플랫포머들은 분명히 일정 수준의 피지컬을 요구하지만, 그것이 게임의 주 컨텐츠는 아니기에 여전히 퍼즐게임이라고 불립니다. 마찬가지로 Viewfinder는 맵 곳곳에 수집요소가 숨어 있지만 주 컨텐츠는 퍼즐이기에 퍼즐게임이라 불립니다.

반면 Hollow Knight와 같은 소울라이크 게임들은 (사람에 따라 길찾기를 퍼즐이라고 느낄 수는 있겠지만) 주 컨텐츠는 전투이기 때문에 퍼즐게임이라 불리지 않습니다. To the Moon은 챕터가 넘어갈 때마다 간단한 뒤집기 퍼즐이 나오기는 하지만 주 컨텐츠는 스토리 감상이기에 퍼즐게임이라 불리지 않습니다. 물론 게임의 어느 부분이 주 컨텐츠인지 명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만 일단 이 글에서 거기까지 다루진 않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게임의 퍼즐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이제부터 등장할 모든 게임들은 머리를 써서 지적 유희를 얻는 게임은 맞습니다만, 그렇다고 과연 퍼즐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2. 퍼즐게임은 플레이어가 답을 제출하기 전에 모든 규칙을 명확히 알 수 있어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퀴즈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퍼즐이라 하면 처음부터 모든 규칙을 명확히 알려줍니다. 하지만 퍼즐게임은 그냥 퍼즐과는 다르게 상호작용이 존재하는 게임이기에 플레이 도중에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특징이 있죠. 그래서 요즘 퍼즐게임들은 처음부터 모든 규칙을 알려주지 않고 스스로 알아내라고 시키는 방식이 대세입니다.

예를 들어 Bean and Nothingness는 각 몬스터의 행동패턴과 상호작용이 어떻게 되는지 직접 실험을 통해 알아내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디자인은 규칙을 알아내는 데서 오는 아하모먼트를 플레이어 경험에 활용할 수 있는 똑똑한 디자인입니다. 나아가 The Witness와 같은 게임들은 아예 규칙을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게임의 주 컨텐츠이며, INSIGHT는 규칙을 잘못 깨닫도록 교묘히 유도한 뒤 마지막에 가서 플레이어가 생각하고 있는 규칙으로는 풀리지 않는 퍼즐을 제시해서 뒤통수를 치는 구성을 선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미궁게임이나 일부 방탈출게임 문제들은 제출해본 답이 맞는다는 판정이 나오기 전까지는 규칙을 확신할 수 없도록 구성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종이에 LIE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고 금고에 317을 입력하는 그런 문제를 말하는 겁니다. 이런 문제들은 그 정도가 심하면 멸칭으로 출제자 독심술 문제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Lingo는 아예 정답을 알아내기 위한 단서 일부가 빠져 있어서 딕셔너리 어택이나 브루트포싱이 필수입니다. Karoshi 시리즈I hate this game처럼 레벨별로 창의적인 해법을 찾아야 하는 게임들도 마찬가지로 규칙과 정보를 숨겨 놓는 것이 특징입니다.

저는 이런 게임들은 퍼즐이 아니라 퀴즈라는 별도의 카테고리로 분류합니다. 퀴즈도 퍼즐처럼 머리를 써서 문제를 푸는 것까진 동일하지만, 퍼즐과는 다르게 규칙이 논리적이고 명확하지는 않으며 규칙을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습니다.



3. 퍼즐게임은 플레이어가 처음부터 모든 정보를 알 수 있어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전략게임이다.


대전게임(PvP)이나 1인 전략게임 (특히 턴제 로그라이크)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퍼즐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데, 정보를 처음부터 모두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대전게임은 상대의 행동을 미리 확신할 수 없고, 전략게임의 경우 맵과 이벤트가 무작위로 정해집니다. 게임을 진행하며 직접 상대의 행동을 보거나 지도를 밝히기 전까지는 정보를 모르기 때문에 심리와 확률에 의거해 전략을 세울 수밖에 없죠. 이게 전략게임이 전략게임이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또한 대전게임의 경우 3인 이상이서 게임을 하게 되면 내가 얼마나 잘 플레이하든 다른 사람들이 작정하면 내가 절대 이길 수 없는 경우도 나옵니다. 2인 대전게임이라도 심리전에 기반한 게임은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정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로그라이크도 고난이도 던전은 맵 생성이 꼬이면 가끔 클리어가 불가능한 던전이 나오기도 합니다. 답이 존재하지 않는데 퍼즐게임이라고 불러줄 순 없겠죠.

다만 대전 전략게임 Gaia Project의 비딩 1:1 대전이나 턴제 로그라이크 Desktop Dungeons의 일부 시나리오는 맵 생성까지만 무작위고 그 이후는 완전정보게임이라서 체르멜로 정리가 성립하여 이론적으로는 퍼즐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됩니다. 이런 경우들은 퍼즐 치고는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그냥 전략게임이라고 퉁치는 경우가 많지만, 잘 생각해 보면 퍼즐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4. 인과나 영향에 대한 지식과 추론을 요구하는 게임을 추리게임이라고 하며, 이는 퍼즐과 독립적인 고유한 장르다.


추리게임의 경우는 일상생활에서 얻은 지식, 특히 인과나 영향에 대한 지식을 요구합니다. 가령 진흙탕은 비가 오면 생긴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금속은 강한 산에 부식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좁은 의미에서의 퍼즐이 어떠한 사전지식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주의: 추리게임은 탐정(detective)게임보다 넓은 개념입니다. 탐정게임이란 추리게임 중에서도 사건을 수사하는 게임만을 특정해서 이르는 말입니다.)

많은 포인트앤클릭 어드벤쳐 게임이나 일부 초창기 방탈출게임은 주변 사물을 현명하게 활용해 문제 상황을 헤쳐나가라는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령 필요한 열쇠가 하수구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주변에서 자석과 긴 실을 구해서 열쇠를 건져내는 장면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이는 열쇠가 자석에 붙는다는 사전지식을 알고 있어야 하고, 동시에 자석과 긴 실이 있으면 열쇠를 꺼낼 수 있다는 사실을 사전지식으로부터 추론해내야 합니다.

저는 추리는 퍼즐이 아니라 그 자체로 고유한 장르라고 봅니다. 물론 추리해낸 사실들을 가지고 2차적으로 퍼즐을 구성할 수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FRAMED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먼저 추리하고, 추리해낸 사실을 기반으로 컷들을 어떻게 배치해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알아내야 하며 이 과정은 퍼즐입니다. 하지만 Return of the Obra Dinn이라든가 역전재판 같은 대부분의 추리게임들은 추리한 사실들로 퍼즐을 구성하기보다는 추리 그 자체를 게임의 주 컨텐츠로 삼기 때문에 퍼즐게임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추리 하니까 말인데, 노베나 디아볼로스클루 같은 진리표 채우기 장르의 게임은 저는 추리 게임으로 쳐주지 않습니다. 인과나 영향에 대한 지식을 요구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어떤 일이 있었어서 이러한 상황이 되었을지, 이런 상황을 만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상황을 만들어야 할지 추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진리표에 OX를 최대한 많이 쳐서 가짓수를 줄이는 게 목적인 이러한 게임들을 저는 디덕션이라는 별개의 장르로 분류합니다.

방탈출게임의 경우 개연성을 확보하지 못한 게임이 많습니다. 접시가 깨진 모양이 왜 캐비닛의 비밀번호인지, 암호가 왜 집 밖의 나비의 날개에 써 있는지 그 인과관계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게임들의 진행 방식은 그냥 아무데서나 보인 암호를 아무데나 입력하는 것에 불과하며 인과관계에 기반한 추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추리게임으로 분류할 수 없습니다.



5. 퍼즐게임이라 불리려면 진행에 필수적인 사전지식을 플레이어가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추리 요소가 아닐지라도 사전지식을 요하는 퍼즐게임들은 있습니다. Scribblenauts 같은 단어게임들이 대표적인 예시인데, 이런 게임들은 플레이어가 다양한 영단어들을 미리 알고 있어야 진행이 가능합니다. Lingo는 단어의 수준이 높아서 사전이나 아나그램 솔버 등을 적극 활용해야 겨우 진행이 가능한 게임입니다. baba is you에는 주어진 알파벳으로 창의적인 특정 단어를 찾아내는 게 해답인 문제들도 있고, 그래서 그 문제들은 핵심 단어를 애초에 모르면 풀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 쉬운 단어고 어디부터 어려운 단어라고 제가 선을 그을 수는 없으니, 플레이어의 지식 수준에 따라 기준이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고 해야겠네요.

사실 단어게임들을 제외하면 사전지식을 요하는 퍼즐게임들은 거의 없습니다. 따지자면 체스 규칙을 미리 알고 있어야 플레이 가능한 체스 아종 퍼즐게임들도 있고, 피타고라스의 정리 같은 수학적 지식을 미리 알고 있어야 풀 수 있는 퍼즐게임도 있기는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글 읽을 줄 알고 계산기 두드릴 줄 아는 정도의 지식만 있으면 퍼즐게임을 플레이하는 데 문제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퍼즐게임은 보통 필요한 모든 지식과 규칙을 게임 내에서 배울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 퀴즈에 속하는 게임들, 특히 미궁게임들은 애초에 플레이어가 필수 사전지식이 없을 거라고 예상하고 구성된 문제들도 있습니다. 검색을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문제들입니다.



이렇게 퍼즐게임과 그 인접장르인 퀴즈/방탈출/미궁/추리/탐정/디덕션/대전/심리/전략/단어 게임들에 대해서 짚어 보았습니다. 아마 동의하시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을 텐데, 당연히 이 정의는 제 주관적인 의견일 뿐입니다. 그래도 평소에 퍼즐게임이나 인접 장르의 게임을 즐겨 하시는 분이라면 이 글이 한번쯤 생각해볼 거리를 제공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제가 플레이한 게임들을 퍼즐과 비퍼즐겜으로 분류해서 후기를 남기고 있는데 분류하기 애매한 게임들이 있어서였습니다. 심심하면 놀러오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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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명, 2024.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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